지구끝의온실 줄거리 및 결말. 독후감상. 리뷰
안녕하세요. 오늘은 SF소설인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을 읽고 느낀 점과 줄거리 등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책의 주요 갈등, 문체 및 표현 방법의 골이 깊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지구 끝의 온실은 진하게 자극적이거나 반전이 강하다는 느낌을 주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책을 볼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상상력을 자극해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이라면, 지구 끝의 온실은 극한으로 치다른 환경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들려줍니다. 이 책은 로봇의 윤리와 그 경계에 대해 꼬여버린 도덕적 딜레마를 던져줍니다. 또한 책의 내용이 추리소설같이 많은 인지적 에너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던지는 질문과 고민을 해결하는 데에 제 에너지를 온전히 할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좋았던 점은 책을 완독한 후에도 책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바로 책의 내용을 곱씹어볼수록 책이 말하고자 하는 쟁점에 대해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준다는 점입니다. 책을 읽는 시점에는 사건 전개와 인물의 감정선 등에 집중하느라 보이지 않았던 윤리 문제들이 다 읽은 후에 하나씩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럼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바로 리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스포를 방지하기 위해 글의 뒷부분에 배치하였습니다.

**지구 끝의 온실 프로필
- 작가: 김초엽
- 출판사: 자이언트북스
- 장르: 공상과학(SF) 장편소설
- 가격: 15,000원
- 분량: 390페이지
#. 소설의 배경
‘지구 끝의 온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중심 소재는 ‘더스트’라는 존재이다. 책은 현재로부터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주요 사건은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솔라리타 연구소’에서 발발한다. 그곳에서는 나노 입자 로봇에 관한 연구가 한창이었고 이는 연구소의 핵심 실험 중 하나였다. 어느 날 실험 도중 나노 입자 로봇의 자가 증식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 나노 입자 로봇이 실험실 밖으로 유출된다. 나노 입자 로봇은 빠르게 자가 증식을 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몸집을 불려 나간다. 그들은 지나치는 곳마다 모든 존재를 파괴하였다. 인류는 이 나노 입자 로봇을 ‘더스트’라고 칭하였으며, 더스트가 세상에 퍼지게 된 사건을 ‘더스트폴’이라고 불렀다.
더스트는 세계 곳곳으로 빠르게 퍼지며 사람을 포함한 많은 동식물을 죽이고 유전자 변형을 일으켰다. 이에 맞서 인류는 존재하는 모든 공장을 가동하여 도시를 감쌀 수 있는 대형 돔을 제작하였다. 소수의 도시만이 더스트가 닿기 이전에 돔을 설치하여 도시를 감싸는 데 성공하여 살아남았고,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도시는 멸망하였다. 이렇게 돔을 감싸 더스트로부터 살아남은 도시를 ‘돔 시티’라고 부른다.
돔 시티의 내부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모든 것이 부족한 고립된 도시에서는 폭력과 굶주림이 만연하였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돔 시티는 강력한 공권력이 장악하게 되었다. 돔 시티 내부의 처참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더스트를 피해 돔 시티 내부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이미 극도로 높은 인구 밀집을 경험하던 돔 시티는 로봇을 동원하여 피난민들을 사살했다.
한편 모든 종에 돌연변이가 있듯이 더스트에 노출되어도 죽지 않은 존재가 있었고, 이 사람들을 ‘내성종’이라고 불렀다. 돔 시티는 내성종을 붙잡아 면역 연구를 목적으로 한 실험체로 사용했기 때문에, 내성종들은 돔 시티에 머물지 않고 돔 바깥의 여러 대안 공동체를 찾기 위해 표류하였다. 이로 인해 돔 시티 외부에서는 내성종을 중심으로 여러 대안 공동체가 설립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안 공동체는 인간의 이기심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빠른 주기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였다. 당연히 돔 외부 역시 생명과 존엄보다 물질과 쾌락이 우위에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즉, 더스트폴 이후에는 돔 시티 내외부로 민주주의, 정의, 인권 등 기존의 가치가 힘을 잃고 약육강식의 원리가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를 ‘더스트 시대’라고 한다.
# 로봇과 인간 그 사이
“너에게 끌림을 느껴” 지수의 손동작이 잠시 멈췄다.
“농담이겠지.” 지수가 중얼거렸다. 레이첼은 대답이 없었다.
1. 로봇 정체성
책의 내용이 진행될수록 깊이 생각하게 되는 주제 중의 하나가 ‘로봇의 정체성과 로봇 윤리’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지수와 레이첼의 관계, 그들의 감정과 정체성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레이첼과 지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챕터를 보면서 꾸준히 느낀 감정은 바로 답답함이었다. 책은 둘의 관계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알려주지 않으며 동시에 둘의 관계를 애매하게 하는 장치들이 난무한다. 답을 찾지 못해 삶은 달걀을 물 없이 먹는 기분이 들지만, 결국 이런 모호성은 독자에게 고민할 공간을 주는 일종의 책의 매력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재미로 밸런스 게임을 한다. 밸런스 게임을 하다 보면 상대방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점점 밸런스의 난이도를 높여가면서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책도 이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한다고 느꼈다. 글이 전개되면서 점점 더 큰 모호한 상황이 등장한다. 그럴 때마다 기존에 내렸던 결론에 대한 확신이 흐려지고 다시 생각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무엇이 옳다 또는 그르다’라고 무 자르듯 속 시원한 판단을 하고 싶은데, 그 경계에 작가가 설치한 불확실성이라는 트랩이 끼어들어 판단을 흐린다. 이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예가 레이첼의 신체에 나타난 유기체 비율의 변화이다. 둘의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주장에 물음표가 찍히는 가장 큰 이유는 유기체와 기계 비율의 변화에 따라 과연 레이첼을 사람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레이첼은 처음 등장할 무렵 30% 이상의 유기체 비율을 갖고 있었다. 신체의 약 70%가 로봇이라고 하더라도 뇌의 대부분은 유기체였으며,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로봇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수가 레이첼에게 느끼는 호기심과 이성적 감정이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전제로 충분히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레이첼의 유기체 비율이 떨어지고 동시에 지수가 레이첼에게 느끼는 감정은 더 커진다. 그래서 둘의 관계가 인간 대 인간의 관계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성립한다는 생각이 의미를 잃는다. 지수는 레이첼이 자신에게 더 의존하도록 만들기 위해 레이첼의 건강 악화를 더 과장하여 표현하는 장면에서는 지수가 느끼는 사랑의 맹목성까지 드러난다. 이 감정은 인간인 지수가 레이첼에게 일방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레이첼 역시 지수가 주장하는 공동체의 대의를 따르지 않고, 비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며 지수를 곁에 두기 위한 고집을 꺾지 않는다. 그러던 중 결국 레이첼의 뇌는 100% 로봇으로 대체된다. 기술이 발달하여 레이첼의 뇌가 로봇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평상시와 같은 성격과 지성으로 생활한다.
이 시점에서 이들의 관계를 바라볼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과연 레이첼이 더 이상 인간의 유기체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그는 여전히 사람인가? 또한 그들의 관계를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 대 로봇의 관계로 보아야 할까? 한편으로는 레이첼의 뇌가 유기체일 때와 로봇으로 대체되었을 때가 전혀 차이가 없기 때문에, 즉 기계가 인간의 뇌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그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머리를 열었을 때 기계로 가득 찬 뇌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레이첼이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2. 사랑의 묘약
책에는 그들의 관계를 바로 정립하기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설정이 등장한다. 지수가 관계에 욕심을 품고, 레이첼의 머리를 정비하던 중 상대에게 긍정적 감정을 갖는 뇌의 기계 부위를 활성화시킨 것이다. 이전부터 레이첼은 지수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뇌의 설정 때문인지 레이첼의 자신의 판단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레이첼은 지수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고백을 하게 된다. 만약 지수가 레이첼 몰래 뇌의 장치를 조작한 후 레이첼이 곧장 감정의 변화를 보였다면, 독자는 명백하게 레이첼의 마음이 조작되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또한 독자들은 레이첼의 뇌가 쉽게 정비사에 의해 조작되는 모습을 보고 기계로서의 존재의 한계를 느끼며 레이첼의 정체성을 '기계'라고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수가 뇌의 스위치를 조작한 후에도 레이첼은 한동안 아무런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가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마음을 고백하게 된다. 또한 그 시기 동안 둘 사이에 오고 간 대화와 감정을 고스란히 노출시키면서 관계에 대한 애매함이 증폭된다. 이와 같은 책의 장치가 뇌의 감정 스위치와 레이첼의 진심 사이의 인과관계를 약화시키고, 레이첼의 정체성에 대한 독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만약 이런 설정이 없었다면, 독자들은 ‘레이첼의 유기체 비율이 점점 낮아짐에도 불구하고, 지수와 레이첼이 오랜 시간 호감을 유지하면서 사랑을 싹 틔웠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그들의 관계가 성립한다는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위와 같은 포인트를 통해 로봇의 윤리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인간과 로봇(또는 AI)의 대립 구도 속에서 로봇의 정체성이나 권리를 규정하였기 때문에, 큰 고민 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우위에 두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고 천천히 기계화되는 과정을 거친 인간이나 압도적으로 높은 기계 비율을 지닌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제는 꽤나 복잡하다. 그들은 단순히 로봇 청소기처럼 인간의 편리를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충분한 과학 기술이 뒷받침되는 미래에 이 문제에 대한 어떤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3. 그래서 남자라고 여자라고
로봇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등장인물의 성별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어려웠던 점은 책의 내용이나 로봇의 윤리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바로 등장인물의 성별이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 둘의 실제 성별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어긋나서 골머리를 앓았다. 지수는 동네 할머니인 이희수와 동일 인물이라는 점에서 책의 후반에 여자라는 것이 밝혀지지만, 프림빌리지 시절의 지수는 기계 정비를 잘하고 남성적 리더십이 뛰어난 모습으로 묘사된다. 만약 지수의 성별을 생각하지 않고 책을 읽는다면 머릿속에 수염 난 아저씨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레이첼의 성별은 한 번도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레이첼을 ‘그’라고 표현하지만, ‘레이첼’이라는 이름 자체는 보통 여성이 갖는 이름이기 때문에 성별에 혼란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레이첼이 등장할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성의 이미지를 지울 수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레이첼의 성별을 의식적으로 정정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나마 책에서 지수의 성별이 비교적 많이 암시된다고 생각한다. ‘지수’라는 이름 자체도 중성적이거나 여성적인 느낌을 풍기며 이웃집 할머니와 동일인일 것이라는 힌트가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가 지수의 성별을 보다 명시적으로 드러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레이첼과 달리 지수는 인간이므로 성별의 정의가 가능했기 때문은 아닐까? 반면 레이첼의 성별은 매우 모호하다. 레이첼이 지수에 비해 훨씬 성별을 추론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의 유기체 비율이 약 30% 미만을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70% 이상이 기계인 존재를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그의 성별을 정하는 것도 확언할 수 없지 않은가.
#. 살아남은 사람들과 역사
더스트 시대 이후에 학교에서는 ‘더스트 시대 기억하기’라는 일종의 역사 특강이 매주 열린다. 특강 시간에는 더스트 시대에서 살아남아 현재 사회를 재건한 공헌자 노인들이 강사로 참여하여 더스트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사람들은 돔 시티의 군인이었고, 어떤 사람은 간호사로 일했다. 학생들은 더스트 시대에 극소수의 내성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간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던 돔 시티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 듣는다. 또한 더스트폴로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공헌자 노인들의 슬픈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던 아픔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더스트 시대 후의 사람들은 그들이 마냥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남을 짓밟거나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생존했기 때문이다. 더스트 시대는 이타적인 사람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였다. 과연 공헌자 노인들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만한 존재인가 아니면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이들을 모두 비난하기에는 극한의 재난 상황에서 당장 눈앞의 죽음 앞에서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또한 더스트 시대 이후의 사람들은 사실 모두 공헌자들의 후손이며, 살아남은 사람들이 손에 피를 묻혔기 때문에 재건된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물려받았다는 점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재앙 속에서 타인의 권리를 빼앗아 살아남은 사람에게 어떤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어야 할까. 그들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또한 도덕적 판단과 별개로 이들이 정부의 보조금 및 각종 혜택을 받는 것은 어떤가? 많은 질문과 의문이 드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그들에 대한 존경에 대한 이슈는 결정을 보류하되, 보조금과 혜택은 정당하다는 절반 짜리 결론이다. 이렇게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보조금과 각종 사회 혜택이 재건된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평화로운 사회를 재건한 당사자인 공헌자들이 그 사회로부터 물질적인 특혜를 받는 것은 논리적으로 결함이 없어 보인다.
#. 재난의 책임
더스트폴이라는 치명적 재난의 귀책을 개인에게 둬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의 경향성 또는 문화의 영향력에 돌려야 하는가? 이 문제를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더스트폴 사건을 도미노에,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을 기울어진 땅에 비유해 보려고 한다. 즉, 더스트폴 사건은 마치 기울어진 땅에 세워진 도미노가 넘어진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개인 또는 이익집단이 그 도미노를 넘어뜨린 것은 맞지만, 도미노가 기울어진 땅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평평한 땅에 세워져 있었다면 과연 도미노가 넘어졌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땅이 얼마나 기울어졌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도미노를 넘어트린 것이 개인인가 아니면 기울어진 땅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 문제에 대해 개인의 귀책을 묻는 것이 정당한가 아니면 불안정한 사회 안전망을 탓해야 할까?
아직 21세기 초반을 지나고 있지만, 이미 많은 재난급 사건이 우리나라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친 사건의 뒷수습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관련 당사자의 처벌과 동시에 사회의 책임을 강하게 물어 근본적인 문제를 수정하려는 노력이 현대 역사의 흐름인 것 같다. 몇 개의 참사와 그 수습 과정을 보면 도미노를 밀친 사람에게 책임을 충분히 묻고 그 사회의 기울어진 땅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다시 평평하게 매우는 방향으로 조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정책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다음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청사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방에 대한 이슈는 뜨겁게 끓던 사람들의 관심이 식을 때쯤 논의된다. 그래서 꼭 필요한 일이 그 중요성 만큼 확실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재난 사고 뒤에는 기울어진 땅을 미리 발견할 수 있도록 예방 및 사회의 안전 민감도를 향상시키는 일도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가 해야할 일 은 다시는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과 그물망을 촘촘하게 하는 조치가 성실하게 실행되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것이 아닐까.
#. 줄거리
1. 모스바나 이상 증식
소설은 더스트 시대가 종식된 후를 배경으로 강원도 ‘해월시’에 이상 증식한 식물 ‘모스바나’로부터 시작한다. 모스바나는 식물의 일종인데, 닿기만 해도 피부가 부어오르는 독성이 있으며 매우 빠른 번식 속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주변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식물이다. 모스바나는 과거 더스트 시대에 가장 많은 개체 수를 보이다가 더스트 시대의 종말과 함께 눈에 띄게 그 분포가 줄어들게 되었다. 더스트 시대 이후 생소해진 모스바나가 이상 증식하는 현상이 발생하자 정부 기관에서는 더스트생태연구센터에 원인을 분석해달라고 요청한다. 더스트생태연구센터에서 근무하는 연구원 아영은 해월시의 모스바나 군락지를 분석하던 중 희미한 푸른빛을 발견하고 의식 건너편에 아련하고 낡은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아영은 그 기억과 모스바나 이상 증식 현상이 관련되어 있다는 직감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된다.
아영의 어린 시절 이희수라는 이름의 노인은 아영과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희수는 기계 정비에 뛰어나서 온갖 신기한 로봇을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식물을 사랑하여 정원을 가꾸는 신비한 사람이었다. 아영은 어느 날 밤 우연히 희수의 정원에서 신비로운 푸른 불빛들을 보게 되고, 식물의 신비함에 매료되어 생태학자가 된다.
모스바나 이상 증식 문제에 대한 실마리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더스트 생태학 학회를 방문하며 풀리기 시작한다. 아디스아바바에는 ‘랑가노의 마녀들’이라고 불리는 더스트 시대의 생존자들이 살고 있었다. 랑가노의 마녀들은 더스트 시대 에티오피아에서 더스트를 잠식하기 위해 분투한 공헌자였다. 마녀들의 이름은 ‘나오미’와 ‘아마라’인데, 이들은 더스트에 대한 면역체계를 가진 내성종이었다. 이들은 어린 시절을 돔 시티에서 실험체로 이용당했는데, 그 무렵 돔 시티에 내전이 발생하자 그 틈을 타 그곳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그 후 그들은 더스트가 존재하지 않는 대안 공동체를 찾아 지구 곳곳을 표류한다. 나오미와 아미라는 여정 중 소문으로만 존재하던 평화로운 대안 공동체 ‘프림빌리지’를 발견하고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 나오미와 아마라는 프림빌리지에서의 모든 이야기를 아영에게 전달한다.
2. 프림빌리지의 탄생
더스트 폴이 터지기 전까지 지수는 기계 정비사였다. 그녀는 더스트 시대에 군에 입대하여 돔 시티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살해하는 로봇을 정비하는 임무를 맡는다. 인간의 살점과 시체에 신물을 느낀 그녀는 돔 시티를 탈출하여 대안 공동체를 찾던 중 자신이 과거에 관리하던 고객인 레이첼을 만나게 된다. 레이첼은 솔라리타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로봇과 인간의 혼합체인데, 뇌를 포함한 유기체 비율이 약 30% 정도이며, 신체의 70%가 로봇이다.
지수는 돔 시티 밖에서 대안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레이첼을 설득하고 그와 거래를 한다. 거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수는 사람들과 협력하여 레이첼이 자유롭게 식물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돕기로 약속한다. 레이첼은 그에 대한 대가로 사람들에게 더스트를 일정량 분해할 수 있는 해독제와 유전자 변이 식용 작물을 제공한다. 이렇게 ‘프림빌리지’라는 대안 공동체가 설립된다. 지수는 ‘프림 빌리지’를 이끌어 가는 리더였고 ‘지구 끝의 온실’ 속에서만 생활하는 레이첼과 소통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어느 날 프림빌리지는 커다란 더스트 폭풍을 맞게되어 큰 위기를 겪는데, 이때 레이첼이 개발한 유전자 변형 식물인 ‘모스바나’로 인해 기억적으로 위기를 넘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기점으로 사람들은 모스바나를 신적인 식물로 생각하게 된다. 이 무렵 모스바나를 두고 마을 구성원 간의 의견 충돌이 발생한다. 한쪽 집단은 모스바나의 존재와 효과를 모든 사람에게 알려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다른 집단은 외부에 이 사실이 유출되면 불가피하게 침략을 유발하여 프림빌리지가 멸망한다고 주장하였다. 다툼이 지속되고 구성원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가던 중 철저히 비밀로 유지하던 프림빌리지의 존재에 대한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게 된다. 그 결과 프림빌리지는 결국 외부의 침략을 받아 그 끝을 맞이한다.
# 결말 [스포주의]
시간이 흘러 솔라리타 연구소는 더스트폴에 대한 연구소의 잘못을 인정하고 관련 자료를 전 세계에 공유한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더스트의 잠식을 목적으로 한 더스트 대응 협의체가 설립된다. 협의체는 결국 더스트를 분해할 수 있는 디스어셈블러를 개발하여 더스트를 종식시키면서 전 세계의 사회가 재건된다.
아영은 나오미와 아마라의 진술을 토대로 해월시의 모스바나 이상 증식 현상을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프림빌리지의 리더 지수의 흔적을 발견한다. 아영은 지수의 존재에서 어린 시절 소중한 기억을 가져다주었던 이희수를 느끼고 그들이 동일인임을 직감한다. 지수의 존재를 발견했을 때는 그녀가 이미 사망한 후였으나, 요양원으로부터 그녀의 유품으로 노트북 한 대를 건네받는다. 노트북에는 지수와 레이첼의 이야기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아영은 나오미와 아미라의 이야기와 지수의 노트북을 토대로 가설을 세워 이와 관련된 논문 발표한다. 아영의 논문의 핵심 내용은 더스트 대응 협의체의 디스어셈블러 이전에 더스트의 농도를 크게 낮춘 요인이 있으며, 그것이 모스바나라는 사실이다. 아영의 논문은 모스바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에서 프림빌리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며 세계의 역사를 다시 쓸만한 큰 파장을 일으킨다. 아영은 모스바나에 의한 더스트 농도 감소 현상에 ‘1차 감소’라는 학명을 붙이고, 수많은 비난 및 지지를 포함한 학계의 큰 관심을 받게 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과와 서재
독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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