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내용 정리. 독후감. 서평
이번 포스팅에서는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은 후 감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간략히 책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 책은 종의 진화에 대한 기존의 지식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유전학 관련 과학 저서입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고립된’ 주장을 펼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적자생존에 대한 개념은 현대 교양인들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굳건한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널리 자리 잡은 지식에 반하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미 현대 인문학과 자연과학 분야 모두에 뿌리 깊게 뻗어 있습니다. 그 누구라도 애매한 논리와 주장을 갖고 덤빈다면, 억지스러운 인상을 남기고 조용히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많은 대중들을 설득하며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끝도 없이 많은 근거와 실험 사례가 기존의 상식을 뒤엎을 수 있을 만한 원동력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책의 뒤편을 먼저 본다면 직접적으로 이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의 총 페이지 수는 대략 400쪽입니다. 하지만 300쪽을 갓 넘기면 책의 모든 내용이 끝납니다. 정확하게는 313쪽부터 책의 1/4 정도의 분량이 참고문헌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됩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통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신뢰성 있게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헌신적인 노력을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위의 참고문헌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정연한 논리 안에서 독자의 관점을 서서히 바꾸는데 사용됩니다. 같이 책을 읽은 동료의 언어를 빌리자면 이 책은 ‘인문학보다 더 인문학 같은 자연과학 책’으로서 양질의 정보를 전달하는 교양 도서입니다. 그만큼 피부에 닿아있는 일상의 삶과 인간관계에 대해 깊게 사색할 수 있고, 개인의 주변을 넘어 지구 곳곳의 현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통찰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론은 이쯤 하도록 하고 독후 감상을 바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책 프로필
- 옮긴이/펴낸이: 이민아/김정호
- 출판사: 디플롯
- 출판년월일 2021년 7월 26일
- 분량: 393P, (실제 분량: 312P)
- 책 가격: 22,000원
Intro. 적자생존
“언제부턴가 ‘적자’라는 개념이 ‘신체적 적자’와 동의어가 되었다.‘
적자생존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십시오.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가 사슴의 심장을 물어뜯는 장면이나 드라마에서 자본이 많은 강자가 가난한 자를 상대로 갑질을 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와 같은 이미지가 적자생존의 인지적 관념과 유사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시는지요. 적자생존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적합한 존재가 살아남는다.’라는 뜻입니다. 다윈이 의도한 적자생존의 의미는 ’자연에서 살아남아 생존 가능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이 대중들에게 ’물리적 또는 신체적으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라는 뜻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일까요?
사실 ’적자생존‘이라는 단어는 다윈의 입에서 등장한 단어가 아니라고 합니다. 책에 따르면 다윈의 전도사를 자처한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언급한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적자생존’을 소개했습니다. 적자생존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자연의 약육강식 현상과 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물리적으로 강한 동물이 가장 매력이 뛰어난 짝을 얻고 가장 맛 좋은 먹이를 독차지하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적자생존의 ‘적자’가 강한 자, 즉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를 의미하게 된 것이지요. 얼마나 강하게 두 개념이 묶였는지, 많은 사람들이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을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적자생존의 개념이 인간 사회의 자본주의 이념에 적용되면서 금수저 등으로 불리는 자본이 많은 대상이 자본이 부족한 약자 위에 군림하는 행위 또는 사고가 자연의 원리로 간주되어 당위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강한 자인 적자 이외에 모든 종은 자연에서 도태된다는 오해 또한 낳게 되었습니다.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르면 적자는 소수의 강력한 종이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 적자생존의 개념은 끝없이 힘과 자본을 얻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이 분투하는 무한 경쟁 사회에 증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탄탄한 이론적 지지를 제공했습니다. 다시 말해, 살아남는 1인이 되기 위한 불꽃 튀는 경쟁이 만연하고, 경쟁에서 밀려 적자가 되지 못한 존재가 고통받는 현상을 ‘자연’스럽게 옹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존의 적자의 개념이 현대 사회의 모든 문제를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많은 문제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기둥 역할을 맡고 있다는 논리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자생존의 개념처럼 정말 지구에는 가장 적합한 소수의 종만 살아가고 있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겉보기에 정말 우스꽝스러운 생명체도 개체 수를 잘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책에서는 ‘가장 적합하지 않은 종이 도태된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 속에서 가장 운이 없는 종이 멸종하게 된다. 충분히 적합한 종, 즉 단 한 개의 종이 아닌 다수의 종들이 생존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적자의 의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생각하는 진짜 적자는 어떤 존재일까요?
# 길들여진 존재 - 가축화
작가가 생각하는 진짜 적자는 물리적으로 강한 종이 아니라 다정함을 가진 존재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다정함은 ‘일련의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협력, 또는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행동’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다정함은 각 개체가 가까이 지내는 단순한 행동부터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협력으로 표현되고, 더 나아가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복합적인 행위까지 발전합니다. 작가는 물리적으로 강한 힘보다 다정함이 자연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것이 생존에 더욱 유리하다고 주장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업하는 행동, 잔인함 및 고통을 목격하는 행위로 수반되는 부정적 감정 등은 모두 인간의 다정함을 근거로 발생하는 행동과 감정입니다. 그렇다면 다정함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몸에 지니고 태어나는 기질적 특성일까요? 저는 다정함이 인간의 기질적인 특성이라는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발달과 함께 학습하는 능력이라는 의견이 조금 더 와 닿습니다. 그러나 책에서는 다정함이 인류뿐만 아니라 몇몇 종의 유전적 특성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유전적 특성이 어ᄄᅠᇂ게 인류의 진화에 유리한 전략이 되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다정함과 협력이 발달에 따른 학습의 산물이 아닌 우리가 유전적으로 갖는 특징이라는 것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주장합니다. 이 문제는 얼핏 보면, 인간의 감정 선택, 감정의 세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제가 본능에 의해 결정되는지, 아니면 학습과 환경에 따라 결정되는지를 논의하는 것과 유사해 보입니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는 다정함은 비단 감정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정함은 감정의 발생을 포함하여 사람의 행위의 전체 과정 또는 행위의 방향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책의 주장으로 돌아가자면, 책에서는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 다른 인간 종이 아닌 호모사피엔스 인간 종을 번성하게 한 가장 주요한 요인이 다정함을 기반으로 한 협력적 의사소통을 통해 발달시킨 초강력 인지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점은 다정함과 관련된 유전적 요소의 존재 여부와 어떤 과정을 거쳐 다정함이 인류뿐만 아니라 몇몇 종의 유전자에 스며들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인 ‘가축화’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가축화라는 개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처음 들어봤습니다만,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또 진행되고 있는 분야라고 합니다. 가축화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 개념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축화를 설명하는 기존의 가장 유력한 가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가축화란 동물이 사람의 지배를 받으면서 경제적으로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유전적 특질이 변하는 현상이다.’
위의 가축화의 정의는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인 관점을 보입니다. 하지만 소련의 유전학자 벨라예프는 오랜 기간에 걸친 실험을 통해 가축화를 설명하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벨라예프는 인간이 동물을 가축화 시킨 것이 아닌, 동물들이 생존의 수단으로 스스로 가축화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잠시 벨라예프가 진행한 단순하고 명쾌한 가축화 실험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실험은 벨라예프가 여생을 헌신하며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고, 그의 제자가 이를 이어 받아 오랜 기간 종단적으로 여우의 유전적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던 실험입니다. 벨라예프는 다음과 같이 가축화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실험 세팅
1. 여우를 두 그룹으로 나눈다.
2. 한 그룹은 사람에 대한 친화적 반응을 보이는 여우로 선별하고, 다른 그룹은 그렇지 않은 여우들로 분류한다.
3. 각 그룹끼리 번식을 진행한다.
벨라예프는 실험을 통해 친화적 반응을 보이는 여우 집단에서 크게 세 가지의 변화를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 변화는 외모에서 나타났습니다. 친화적 여우 집단의 털에서 황갈색 털과 흑백 얼룩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개의 초기 가축과 과정에서도 일어난 동일한 변화입니다. 두 번째는 번식 능력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친화적인 여우 무리는 다른 무리의 여우보다 한 달 이르게 성체가 되었고 더 많은 새끼를 낳았습니다. 세 번째 변화는 의사소통 능력입니다. 친화력이 좋은 여우 집단은 선천적으로 다른 여우 집단보다 인간의 손짓과 같은 의사소통 단서를 더 잘 읽었습니다. 그 말은 즉, 친화력 높은 여우 집단이 인간의 마음과 의도를 이해하는 능력이 더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가 유전적 특질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더 확실히 뒷받침하기 위해 책에서는 VVU12 염색체를 소개합니다. 이 염색체는 과도한 친밀함이 특징인 윌리엄스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에게 나타나는데, 해당 유전자 변형이 친화적인 여우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가장 친화적인 동물인 개에게도 발견되었습니다.
벨라예프는 실험을 진행하며 기존의 가축화 이론의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만약 사람이 의도적으로 동물을 가축화시켰다면 빙하시대에 인간 종이 가장 친화적인 늑대를 선별해서 10여 세대 이상을 번식시켰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죠. 그 당시 정해진 서식지가 없던 빙하 시대 수렵채집인들이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가축을 길들이고 선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인간이 얻은 음식을 가축들과 필연적으로 나누어야 하는데, 이 과정을 십여 세대 이상 거쳤다는 논리는 허점이 많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벨라예프는 사람이 자신에게 친화적인 가축을 선별하여 의도적으로 가축화 시켰을 것이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지며, 친화적인 늑대가 스스로 가축화를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위의 주장은 기존의 인간 중심적인 가축화 이론에 반기를 들고, 가축화를 경험하는 동물이 생존을 위해 가축화를 주체적으로 선택했다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이에 따라 그는 사람이 가축을 통제하기 이전에 동물들이 수 세대에 걸쳐 친화력을 스스로 발달시킨 ‘자기가축화’ 시기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자기가축화이론은 동물들의 친화력을 설명하기에 매우 적합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핵심적인 질문인 ‘그렇다면 사람의 다정함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물음에도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 사람도 가축일까요? <자기가축화>
가축화 동물들이 자연환경의 적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인간과 친화적인 방향으로의 진화를 선택했다면, 사람의 친화력과 그 부산물인 협력적 의사소통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유전학자 랭엄은 사람도 다른 인간 집단과 함께 생존하기 위해 공격성이나 동물적 본성을 억제하고 친화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자기가축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동물들이 자기가축화를 겪고, 그 결과로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과 마음이해 능력이 증진된 것과 사람의 특성이 유사하다는 것을 근거로 합니다. 랭엄은 이를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이라고 부릅니다. 이 가설에는 한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종(인간)의 의사소통 능력과 마음이해 능력이 다른 종보다 압도적으로 탁월하다는 점입니다. 어째서 같은 자기가축화를 거쳤지만 그 결과가 극과극일 수 있을까요? 저자는 동물과 사람의 차이를 만들어 낸 거대한 스노우볼의 동력을 ’자제력‘에서 찾습니다. 랭엄의 실험에 따르면 뇌의 용적 및 신경세포의 밀도와 자제력은 양적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또한 자제력은 초인지 능력의 발달 및 지능과도 양적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다른 종과 비교하여 사람의 뇌의 용적 발달과 신경세포의 밀도가 극단적으로 높으므로, 사람의 인지능력이 다른 종보다 탁월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추론했습니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에서는 친화력이 사람 종 발달을 빠른 속도로 선순환시켜준 핵심 요인이라고 말합니다. 사회적으로 더 연결될수록 더 많은 인지 활동이 요구되고 더 밀도 높은 집단을 형성하여 새로운 기술 개발과 혁신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실험에서 랭엄은 가축화된 동물의 부신이 유사 야생 종의 부신보다 더 작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부신은 우리 몸에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인데, 부신이 작다는 것은 그만큼 스트레스를 적게 느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트레스의 감소는 개체의 공격성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사람이 높은 자제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작은 크기의 부신은 인간의 공격성을 감소시키고 협력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유전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람된 주제이지만, 참고로 인간의 자제력은 우리의 인지능력 중에서도 현저하게 더디게 발달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4-6세 이전에 인간의 자제력은 다른 유인원보다 뒤처지거나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마시멜로 테스트도 4-6세 이후가 되어야만 실시할 수 있습니다. 20대 초반이 되어서야 자제력이 완전히 성장합니다. 요즘 촉법소년과 청소년 범죄 처벌 연령 조정에 대한 주제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에게 실수에 대한 관용을 적용하는 법과 관행도 뇌과학적으로 조망하면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청소년의 연령과 죄질 및 처벌 강도에 대해 다수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겠죠.
자기가축화의 가장 큰 장점은 친화력이 높다 못해 처음 보는 대상에게도 다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 종의 높은 친화력은 집단 내 타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우리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 공통 집단에 있는 개체라고 여겨지면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도 친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집단 내 타인에게 느끼는 감정은 우리가 흔히 인류애라고 표현하는 감정과 비슷해 보입니다. 제3세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인류라는 공통분모를 근거로 그들에게 도움을 줍니다. 또는 그들의 아픔에 물질적으로 동참하지는 않지만,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공감하는 마음으로 도덕규범을 만들어 지키기도 합니다. ‘물 아껴써라. 이 물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또는 ‘밥을 싹싹 긁어 먹어라.’와 같이 어린 시절 많이 듣던 부모님의 잔소리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친밀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외적인 행위로 친밀함을 표현하지 않을 뿐,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니세프 광고가 나올 때마다 불편한 감정에 TV 채널을 돌리는 것 역시 우리가 본능적으로 그들에게서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하지만 인류의 따듯한 면만 강조하기에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처절한 고통과 모순이 많이 존재합니다. 이 역시 글의 뒷부분에서 다정함과 관련지어 설명합니다.
# 협력과 생존
위의 글에서 아직 대답하지 않은 핵심 질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다정한 존재가 정말 강한 존재보다 자연선택에 있어서 적자가 맞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협력과 생존의 관계를 침팬지와 보노보의 성향 비교를 통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다정함은 서로의 협력을 필연적으로 수반합니다. 협력하는 행동은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고 치열한 야생의 생존과는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생존에 큰 도움을 주는 행동입니다. 책에서는 협력의 힘을 설명하기 위해 침팬지와 보노보를 비교합니다. 보노보와 침팬지가 현존하는 동물 중 인간과 가장 유사한 유전적 특징을 보이는 영장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노보라는 동물을 이 책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보노보의 사진을 보면 침팬지와 외적으로 거의 유사하지만, 그들의 성향과 사회성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침팬지의 성향은 다소 공격적이고 폭력적입니다. 침팬지 집단은 강한 수컷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사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침팬지의 어중간하게 높은 지능은 폭력성과 결합하여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하곤 합니다. 그 장면은 그들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를 공격하거나 무리의 약자를 순수 오락의 목적으로 괴롭힐 때 나타납니다. 침팬지의 싸움에서는 그들만의 사회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뼈를 의도적으로 부러트리거나 성기를 뽑는 등 동물이라고 보기에는 꽤나 잔혹한 방법이 사용됩니다. 침팬지의 예를 보면 공격성의 대가가 심각한 부상이나 사망을 낳을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보노보는 높은 친화력을 바탕으로 침팬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사회를 유지합니다. 보노보 사회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존재는 암컷과 아기 보노보들입니다. 강한 수컷 침팬지들이 힘으로 암컷을 짓눌러서 번식 기회를 얻는 반면, 수컷 보노보들은 암컷과 그 가족들에게 협력적 행동을 보여주고 좋은 인상을 쌓는 방식으로 번식 기회를 얻습니다. 각각의 암컷 보노보들은 다른 모든 암컷과 아기를 보살피고 지킵니다. 그 결과 번식에 가장 성공한 수컷 보노보는 침팬지보다 더 많은 후손을 얻게 됩니다. 이는 공격성보다 친화력이 생존에 더 도움이 되고 진정한 적자는 친화적인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지지합니다.
만약 친화력이 높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 종의 생존에 유리하다면, 자기가축화의 목적이 사람과 공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종의 생존을 위한 진화 과정이라는 관점도 타당해 보입니다.
# 관상학의 과학
저는 관상학이 과학적에 기반한 학문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습니다. 영화 ’관상‘을 볼 때도 관상학은 그저 옛날 사람들이 믿었던 미신 정도라는 생각을 하고 완전한 허구라는 입장으로 접근했었습니다. 최근에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지낸 친구가 취업을 했습니다. 그 당시 입사한 회사에는 면접 과정에서 피면접자의 관상을 결과에 반영하여 채용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해당 회사를 비이성적 또는 비논리적인 회사로 간주했습니다. 또 한 번은 한 TV 프로그램에서 검지와 약지 손가락의 길이로 남성의 성기 길이와 남성성을 추정하는 내용을 접했습니다. 저는 그 내용을 보고 마치 빨간 글씨로 이름을 적은 것 마냥 괜히 손가락을 펴서 검지와 약지를 비교해 보았지만, 딱 그만큼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책에서 여성호르몬과 남성 호르몬의 분비에 따라서 외모와 신체적 형상이 변한다는 내용이 나오더군요. 정확히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과 검지와 약지의 길이 비율이 언급되었습니다. 제가 미신으로 치부하던 것들이 과학적 근거가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인간의 얼굴에 남은 가축화의 흔적에 대한 내용을 보고 저는 관상학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의 연구 결과는 모두 외모와 호르몬의 관계를 지지합니다. 친화력이 높은 존재는 세로토닌의 농도에 따라 두개골의 모양 및 크기와 이마의 모양이 결정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되는 사춘기 남성은 눈썹활이 두드러지고 얼굴이 길어지는 특징을 보인다는 결과를 내놓습니다. 그래서 이런 얼굴을 흔히 ’남성적‘이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관상학을 믿지 않는 사람조차도 이 사실에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적‘ 얼굴을 가진 남자에 대해 불성실, 공격적, 비협조적 등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그 밖에 유전적 특질과 외모와 관련지어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얻은 연구들은 매우 많습니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로 미루어 보아 과거에 관상학자들이 호르몬과 외모를 과학적으로 관련지어 설명하진 않았지만, 많은 사례를 보고 귀납적으로 얼굴과 성격 및 욕구를 성공적으로 관련지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어두운 본성: 비인간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뉴스에서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접하곤 합니다. 책에서도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로 관련 내용을 제시합니다. 한 가지 책에 나온 사례를 빌려보겠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르완다를 점령한 벨기에인들은 측정 도구로 원주민의 얼굴을 측정하여 유럽인들과 더 유사한 족속을 우월하다고 평가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르완다에는 민족 간 신분 계층이 발생했습니다. 계층에 대한 인식은 르완다를 억지로 분열시켜 오랜 내전이라는 결과를 불러왔으며, 1994년 르완다 투치족 대학살로 정점을 찍게 됩니다. 어떻게 서로에게 인류애를 느끼고 타인에게도 다정함을 아끼지 않는 존재가 이렇게 사악한 일을 벌일 수 있을까요?
책에서는 이에 대한 실마리 역시 다정함에서 찾습니다. 우리 사람 종의 다정함이 너무 과한 나머지 자신의 집단에 속한 누군가에게 위협이 주어질 때 상대 집단에 가혹할 정도로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고 주장합니다. 개와 보노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가족에게 위협이 된다면 날카로운 이빨을 보입니다. 우리는 다정함을 강하게 느끼는 대상일수록 그들이 받는 위협에 대항하여 더 강한 폭력성을 내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내부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강한 폭력성이 나오는 것일까요? 가장 간단한 대답은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 위협이 되는 무리를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위협적인 대상에게 공감하고 협력할 필요를 제거하여 그들에게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죠.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나름에 이유를 덧붙여 공감하지 못하는 능력은 얼핏 생각하기에 사회적 또는 학습의 영역이라고 여겨집니다. 작가는 이에 대한 근거로 옥시토신이라는 익숙한 호르몬을 언급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의 역할은 편도체가 받는 위협 신호를 증폭시키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관장하는 기관을 무디게 만드는 것입니다. 편도체는 우리가 공포나 위협을 느꼈을 때 우리 몸에 대피 신호를 내리는 뇌의 기관이기 때문에 사람의 공격성과 관련이 깊습니다. 신경과학자 라사나 해리스는 사회적 대상에 따라 공격성과 공감 정도가 변화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옥시토신의 분비를 관찰하는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는 첫째로 피실험자에게 노숙자나 약물중독자의 사진을 보여주고 편도체의 반응을 관찰했습니다. 그 후에는 피실험자들에게 사회적으로 알려진 부자나 능력 있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결과 노숙자의 사진을 본 피험자들의 편도체 반응이 부자 집단의 사진을 본 피섬자들보다 더 활성화되었습니다. 이 실험은 인간이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강한 공격성 충동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또 다른 실험에서는 옥시토신을 직접 흡입한 한 민족 집단이 흡입하지 않은 집단에 비해 사람의 표정에서 공포와 고통을 더 잘 지각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실험을 보면 인간의 비인간화 전략이 단순히 이성적인 사고 과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타집단에 대해 느끼는 공포감이나 공격성이 기질적으로 뇌의 구조 및 호르몬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람 뇌는 논리적이지 않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타집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의 근원이 ‘얼마나 위협적인가’ 또는 ‘실제 그들이 위협이 되는가’ 등의 질문에 대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검증 과정을 거쳤는지 천천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저 느끼는 대로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위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얻더라도, 감정이 더 극단적으로 증폭되어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책에서 다루는 비인간화와 관련된 내용 중에 가장 기만적이라고 느낀 삽화가 있는데, 아래와 같이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삽화입니다.
이 삽화는 1965년 <타임-라이프>지에 의해 제작된 ’인류 진화도‘입니다. 이 삽화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인류 진화도는 진화가 그림에 따라 선형적으로 발전한다는 인상과 그 정점에 우뚝 선 존재가 사람 종이라는 것을 내포하는 잘못된 의미를 전달합니다. 인류 진화도의 편집진 중 한 명이었던 인류학자 클라크는 “삽화가 본문을 압도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본문에서 하려던 작가의 진짜 의도가 삽화에 덮여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위의 삽화는 사실 역사적 시간에 따른 그림 배열일 뿐 제일 왼쪽의 원숭이에 가까운 존재가 선형적으로 진화하여 제일 오른쪽에 사람이 되었다는 것, 즉 왼쪽 원숭이와 제일 오른쪽 사람이 같은 종임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그렇게 전달되었고, 저는 이 의미를 학창 시절 이후로 쭉 옳다고 믿어왔습니다. 작가는 삽화가 대중의 인식을 왜곡시켰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비인간화의 척도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삽화와 관련해 크테일리 실험이 소개됩니다. 실험에서 피험자들은 이 삽화를 보고 여러 민족이 얼마나 진화되었는지를 점수화하라는 요구받습니다. 상당 부분의 피험자들은 실제로 무슬림을 비인간화하고 가장 사람으로 덜 느껴진다는 답을 합니다. 인류 진화도처럼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익숙한 이미지가 다른 집단을 비인간화하는 근거로 사용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또한 무슬림을 비인간화 한 피험자들은 가장 높은 비율로 중동에 드론 공격과 군사적 고문을 정당화하였습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비인간화가 그 집단에 대한 공격성으로 이어진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비인간화하는 과정과 그 원리를 ‘다정함’에 근거하여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비인간화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인간화가 단순히 한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비인간화를 재촉하는 요인이 상대 집단과 쌍방으로 이루어지는 비인간화라고 말합니다. 상대 집단에 대한 비인간화는 ‘네가 먼저 했다’라는 다소 유치한 논리로 가속화됩니다. 상대 집단이 우리 집단을 먼저 비인간화했을 때, 집단의 구성원들은 강한 위협을 느끼고 더 강한 비인간화를 상대 집단에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보복성 비인간화’라고 합니다. 이런 경향은 흔히 정치적인 목적 아래 악용되곤 합니다. 책에서는 이에 관해 이라크와 미국의 사례를 제시합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이라크와 미국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라크에 반하여 쿠웨이트 방어를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송 선전을 활용했습니다. 그 방송의 내용은 이라크 군인들이 쿠웨이트의 병원에서 인큐베이터의 조산아들을 밖에 내던졌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라크 군인들의 폭력성과 비인간성에 분개하는 국민 여론이 형성되었고 미국은 쿠웨이트에 군사 작전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해당 방송은 날조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정치적 도구로서 비인간화가 가장 비극적으로 이용된 결과는 20세기 초에 우생학에 기반한 인간 품종 개량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우생학자들은 우리의 유전자 가운데 사회적으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유전자만을 남기기를 바랐습니다. 20세기 초에 미국인들에게는 우생학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의사, 교사, 정치인, 종교 지도자 등 너 나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지식인층이 우생학을 지지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우수하지 않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가장 눈에 띄는 대상은 장애인과 범죄자였습니다. 그 결과 셀 수 없이 많은 강제 불임수술이 장애인 시설과 감옥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우생학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점차 대범해져 갔습니다. 집단 내부가 아닌 사람들, 즉 소수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은 우생학의 이름 아래 더 이상 번식해선 안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적으로 분방한 여자, 빈곤층, 흑인, 성소수자, 미혼모의 아기 등 조금이라도 사회적으로 힘이 없거나 일반적이지 않다면 우생학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책에서는 그 목록이 너무 길어 이 표적을 피해 간 그룹이 있었을지 의아할 정도라고 표현합니다. 제가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20세기 초의 사람들을 교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나 광적인 사람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굉장히 최근까지 우생학의 결과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생학을 언급할 때 나치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나치 정권이 멸망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약 50년까지(1983년까지), 그것도 미국에서 강제 불임 수술이 지속되었습니다. 우생학이 성공한다는 생각은 터무니없게도 오랜 기간 동안 비교적 최근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사람 종의 유전자는 몇 가지 일까요? 책에서는 ‘신장처럼 단순한 신체 형질조차도 관련 유전자는 거의 700개에 달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몸의 모든 장기와 조직을 생각하면 어떤 사람으로부터 특정 유전자를 추출하여 번식시키는 행위의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몸은 ‘계(system)’입니다. 즉, 수도 없이 많은 유전인자가 상호작용하고 환경 요인까지 적극적으로 가세하여 우리의 몸과 행동을 구성합니다. 조금이나마 이를 고려하면 우생학에 기반을 둔 인간 품종 개량이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론에서 등장하는 재미있는 설화를 소개하면서 비인간화에 대한 감상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미국 의회가 서로를 향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설화입니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워싱턴은 화기애애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미친 듯이 논쟁하다가도, 업무가 끝나고 밤이 되면 같이 골프를 치러 가는 건강한 경쟁을 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들은 자주 백악관에서 모였고 지역구에서 운전대를 서로 바꿔 잡아가며 밤새 한 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관계 속에서 미국 의회는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법을 통과시키는 성과를 이뤄내게 됩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하원의 장이며 공화당 소속인 깅그리치는 민주당을 제압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전략으로 양당의 우호적 관계를 망쳐 놓기 시작했습니다. 깅그리치는 양당의 의원들이 함께 관계를 쌓을 수 없도록 하원 의원들에게 각자의 지역구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양당 의원들은 백악관에서 모이지 못했고, 가족을 데리고 워싱턴으로 이사하는 의원이 줄면서 정치인들이 서로 우정을 쌓는 전통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깅그리치는 그 밖에 다양한 전략을 통해 공화당과 민주당을 서로 적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그중에 한 가지는 서로를 모욕하는 것이었습니다. 양당 의원들은 서로를 나치에 지주 비유했고 서로에게 더 강한 맞불을 놓으면서 초당파적 협의는 온데간데없는 전통이 되었습니다. 결국 깅그리치는 결국 상원까지 접수하는데 성공합니다. 깅그리치가 사용한 일련의 전략은 양당 모두가 보복적 비인간화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 비인간화와 편견의 해결
편견은 오류가 있으나 완고한 일반화가 기반이 되는 혐오 – 고든 알포트(Gordon Alport)
아래의 두 가지 논리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속으로 각각의 논리에 대해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1. 인종분리 학교
인종 분리 학교는 결론적으로 흑인 학생에게 더 도움이 된다. 인종분리 학교에서는 흑인 학생들이 사람으로 대우받는다. 또한 이미 사회를 겪은 선배 교사들에게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와 정체성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배운다. 인종 통합 학교에서는 말뿐인 통합을 지향할 뿐이다. 인종 통합 학교에는 사실상 사회에서 흑인들이 차별당하는 과정과 유사한 모든 환경을 포함한다. 흑인 아이들은 인종 통합 학교에서 새로운 형식의 노예제도를 경험한다.
2. 장애인 특수학교
장애학생들은 일반 학교에 통합되어 교육을 받는 것보다는 장애인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이 더 적절하다. 특수학교에는 장애인을 위한 모든 시설과 지원이 충분하다. 일반학교에서 장애 학생들은 사회적 계급 및 차별 외에는 별다른 배움을 얻지 못한다. 장애학생들은 특별한 교육적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같은 내용을 학습하는 일반 학교는 적절하지 않다. 또한 장애인들이 사회적 기술과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도 그들에게 특수학교가 더 적절하다. 장애인의 친구는 같은 장애인이다. 장애인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장애인이다. 왜 장애인들이 일반학교에서 교육받으며 비장애인과 함께 생활해야만 하는가?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 학창 시절의 시간은 소중하다. 그 소중한 시간에 두 집단 모두 어려움을 겪으며 피부를 맞대고 살아갈 필요는 없다.
위의 논리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위의 논리에 동의하시나요? 아니면 다른 생각이 드시나요? 책에서는 위의 논리를 반박하는 내용을 비인간화의 해결 방안으로 제시합니다.
계속해서 언급했듯 우리는 집단 외의 대상이 우리에게 위협을 가져다 주는 경우 그 집단에게 보여주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집단의 구성원을 알 수 없는 존재로 가정하고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그들을 멀리합니다. 만약 그들이 조금이라도 위협이 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신경망에서 제거하고 없는 존재처럼 대합니다. 모순적이게도 어떤 대상을 없는 존재처럼 여길 때 더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게 되는 경험을 종종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평생 동안 미지의 대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비인간화 전략을 사용하면서 살아가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작가는 집단 간 비인간화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존재를 탐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과연 위협이 되는 존재인지 아닌지 직접 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내기도 충분히 바쁜 현대인들에게 직접 알아보는 노력을 요구하면 사람들이 과연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그렇게 할까요? 저는 그럴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국가 정책들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위협이 없는 접촉 기회를 최대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학교는 법적으로 인종 분리 학교를 규정하지는 않지만 인종 분리 학교가 여전히 존재하고, 그 속에서 인종 간 갈등과 편견이 여전히 작용합니다. 하지만 인종 분리 학교를 제도상 지지하던 2000년대 초반만큼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많은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고 있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인종 간 접촉 기회를 만드는 정책입니다. 인간 집단이 피부색에 따라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피부로 느끼게 하는 것이 고정관념을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장애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정말 장애가 심해서 일반 학교에서는 전혀 배움이 없거나 삶의 전반적 영역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함께 교육받고 생활하는 것이 결국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더 이로울 것입니다. 모든 학생은 학창 시절부터 위협이 없는 안전한 접촉을 통해 서로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등을 배워야 합니다. 당연히 인종 간 갈등처럼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의 갈등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갈등은 편견에 금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책에서 나온 접촉을 막는 도시에 대한 내용이 참 인상적입니다. 큰 도시들이 사람들의 접촉을 막는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다리 아래에 촘촘히 박아 넣은 철심과 공원 벤치 사이에 팔걸이를 설치하는 것입니다. 이 장치들은 노숙자들을 표적으로 제작된 디자인으로, 그들의 쉼터를 빼앗았습니다. 노숙자들을 점점 사회에서 볼 수 없도록 도시가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도시 디자인은 사람들이 노숙자와 접촉하며 그들의 삶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합니다. 노숙자에 대한 이유 없는 위협과 편견을 느끼지 않으려면 그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도시는 다양한 집단의 교류와 접촉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카페, 극장,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서로를 알아갑니다. 편의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음식과 편의시설을 배달해 주는 문화는 이런 점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에서는 인간은 큰 규모의 집단 안에서 협력이 발생할 때 가장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종이 된다고 말합니다.
끝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나치 정권과 관련된 사례를 소개하면서 접촉의 중요성을 어필하고 감상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나치 정권이 우생학을 등에 업고 유대인을 학살할 때 모든 독일인이 나치에 협조하여 그들을 고발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독일인들이 유대인 학살을 막기 위해 그들을 숨겨주거나 피신시키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그들을 고발하지 않는 수동적인 노력을 한 사람은 더욱 많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나치 정권에 속한 많은 공무원 중에서도 유대인을 구한 사례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몇몇 독일인들이 목숨을 내 걸 만큼 ‘다정할’ 수 있었던 이유은 무엇이었을까요? 유대인을 구한 영웅들은 성별, 교육 수준, 종교 여부, 나이, 사회경제적 수준이 다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그들을 관통하던 공통점은 전쟁 전에 유대인과 인간적 관계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유대인과 직접 접촉하여 생활한 독일인들은 민족이 다르더라도 결코 인류는 다른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던 것입니다.
다정한 우리 사람 종이 타 집단에 대해 편견을 두르고 우리가 느끼는 그대로를 태도로 내비치는 것은 강한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비인간화가 지속되지 않도록 서로 교류하는 사회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과와 서재
독후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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