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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일의 기쁨과 슬픔 독후감, 줄거리 및 해석. 장류진 작가

by 벌레책 2022. 5. 23.

일의 기쁨과 슬픔 독후감, 줄거리 및 해석. 장류진 작가

안녕하세요. 오늘은 최근에 읽은 책인 장류진의 단편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리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책의 프로필입니다.

- 장르: 단편소설, 소설집
- 분량: 235페이지
- 출판 연월일: 2019.10.25.
- 단편 수: 8(1개의 단편 당 평균 30페이지 분량)
- 출판사: 창비

  이 책은 개인적으로 최근 본 단편 소설집 중에 단언하건대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각각의 단편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신선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앉은 자리에서 몇 개의 단편을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단편들이 일의 기쁨과 슬픔, 즉 직업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으며, 특히 여성으로서 회사에서 겪는 차별적 요소와 미묘한 설움이 재치 있게 담겨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8개 중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3개의 단편을 뽑아서 느낀 점을 적어보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합니다.

  1. 잘 살겠습니다.
  2. 일의 기쁨과 슬픔
  3. 나의 후쿠오카 가이

일의-기쁨과-슬픔-대표-이미지
일의 기쁨과 슬픔 포스팅 표지

# 1. 잘 살겠습니다.

“회사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돌리기 전에 예상했던 어려움은 이런 거였다. ‘이걸 왜 나한테 줘?’
왜 나는 안 줘?’ 때문에 곤란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1. 줄거리

  주인공인 와 남자친구 구재는 3년의 비밀 사내 연애를 철저하게 성공한 커플이다. 더 이상 비밀연애를 할 필요가 없어진 이들은 3일 뒤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결혼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어느 수요일 저녁, ‘는 지난 3년간 연락이 없었던 회사 동기 빛나에게서 연락을 받게 된다. ‘는 연말보다 할 일이 많은 금 같은 결혼식 전 일주일을 보내고 있었기에 연락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집요하게 일정을 조정한 빛나 덕분에 눈치 없는 약속이 잡히게 되고, ‘빛나의 불편한 관계가 시작된다.

 

2. 극과 극

  ‘빛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화려한 외모와는 반대로 언니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 엉덩이까지 오는 지나치게 긴 생머리. 특애비동을 주문하고 새우가 너무 많다면서 짓는 순진무구한 웃음. 밥을 얻어먹고 카페 계산대에서 카드를 내밀지 않는 뻔뻔함. 본인 역시 결혼을 앞두고 공짜 커피를 마시면서 결혼 준비에 대해 소상히 묻는 당당함. 그녀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다.'

  빛나는 결국 결혼식에 오지 않는다. 축의금도 보내지 않았다. 빛나는 의 바쁜 일정을 쥐어짜서 밥을 얻어먹었고, 청첩장을 직접 받았으며, 결혼 준비에 대한 모든 정보를 받아 갔다. 또한 상대방에게 주는 선물을 상대방이 직접 고르도록 하면서도 자신의 청첩장은 다른 언급 없이 '나'의 키보드 아래 숨겨두고 간다. 빛나는 가끔 이해타산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둘의 관계를 계산기를 두들겨 구입한 11,000원짜리 핸드크림과 카드에는 눈물을 쏟는 의외의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해석되지 않는 사람을 한 데 모아 특이하다, 4차원이다등으로 표현하고, 빛나는 딱 이 정의에 적합하다.

  빛나는 끊임없이 무신경하고 사회의 규칙을 생각하지 않는 듯한 ‘4차원의 모습을 보인다. 책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빛나의 뻔ᄈᅠᆫ하고 낯두꺼운 행동에 답답함을 느끼며 를 토닥였을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누구라도 축의금 5만 원짜리 관계에 과분한 호의를 베풀었다면, 상대방에게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기다리기 마련이다. 정확히 내가 준 것을 계산하려고 들지 않아도, 최소한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인 근사치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받아야 그 관계가 유지된다. 빛나는 보기 좋게 그것을 걷어 차버린다. 빛나사회적인상황에서 그 누구와 만나도 높은 확률로 관계의 균열을 만들어 낼 것이다.

  빛나와는 다르게 는 여성으로서의 미묘한 차별과 반복되는 야근을 견디고 핵심 부서로의 이동에 성공한 능력 있는 여성이다. 눈치가 빠르고 사회적 예의를 갖추었다. ‘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적 센스가 부족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 역시 처음에는 빛나에게 주었던 것을 그대로 돌려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빛나가 '나'의 노력과 희생을 알아주고 적당한 답례를 했다면, 둘의 관계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분명히 는 사회적으로 용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어느 정도는 빛나를 위해 희생할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규범과 암묵적인 규칙을 벗어나는 빛나의 행동이 의 분노를 폭발시킨다. 급기야 는 층간 소음을 일으키는 사람에게 슬리퍼를 선물하듯, 11,000원짜리 핸드크림에 진짜 의도를 숨겨 빛나에게 자신의 분노를 전달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보기 좋게 예상을 비껴간다. 빛나는 이미 언급했듯, 진심으로 감동하며 눈물을 보인다. 또한 선물을 손 편지에 담긴 진심.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문구와 함께 카톡 프사에 올리는 정성을 보여준다.

  ‘와 빛나 중에 누가 더 사회적으로 센스 있는 사람이냐는 질문을 한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올곧은, 성숙한, 가치 있는과 같은 형용사로 둘을 평가한다면 나는 대답을 망설일 것이다. 두 사람은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보편적인 문화와 규범이 작용하는 사회라는 집단을 제외하고 두 사람 간의 일직선의 관계만 놓고 볼 때, 두 사람이 느끼는 이질감의 총량은 비슷할 것이다. 그 관계에서 빛나와 중에 어떤 쪽이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스트레스 앞에서 여유로운가를 살펴볼 때 오히려 빛나 쪽이 더 여유롭고 그것을 잘 다스린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3. 저마다 색이 다른 경단

  빛나와의 해프닝이 잊힐 때 즈음 는 평소에 간단하게나마 챙겨 먹던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다. 때마침 사무실 책상 위에는 빛나의 결혼식 답례떡이 올려져 있었다. 백설기 한 조각, 저마다 색이 다른 경단 4, 쑥색 꿀떡 2. 지각을 그렇게 많이 하는 사람이 어떻게 떡을 당일 새벽에 찾았는지 떡이 아직 따듯하다. ‘는 쫄깃한 떡을 우물거리며 빛나가 부디 잘 살 수 있기를 조용히 바란다. 색이 다른 경단 4개는 마치 빛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어쩌면 빛나는 수시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파악하고 사회적 맥락을 읽을 필요성이 없는 인생을 살아온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잣대로 평가할 때, 빛나는 나이를 스물일곱이나 먹고 부동산 사기나 당하는 인생 헛산 사람이며,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푼수 취급을 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만약 이 사회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경쟁 사회가 아니었더라면, 눈치 있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만이 미덕이 아닌 사회라면 빛나는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다른 시각에서 빛나를 보면 그녀는 어떤 환경에서든 그곳에 물들지 않는 강한 개성과 정체성을 갖고 있다. 또한 그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가끔은 나 자신을 유지하며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나를 통째로 바꾸는 것보다 어렵게 느껴진다. 빛나는 그 어려운 것을 해낸다. 계산기 같은 사회에서 자신의 색채를 유지하며 온기와 든든함을 주는 경단 같은 사람은 분명 필요하다. 눈치와 사회생활이라는 현대사회의 분위기도 좋지만,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갖는 문화가 부디 사라지길 바란다.

#2. 일의 기쁨과 슬픔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일의 기쁨과 슬픔은 소설집의 제목과 같은 제목의 단편입니다.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이 일에 대한 고찰을 재미난 에피소드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의 본질을 재미있는 이야기 뒤에 숨겨 전달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이 소설집을 대표한 이름이 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추측하면서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1. 줄거리

   주인공 안나는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 우동마켓을 운영하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어느 날 우동마켓에 거북이알이라는 닉네임의 중고거래자가 골칫덩이로 등장한다. 거북이알은 뜯지도 않은 새 상품을 하루에 거의 백 개씩 올리는 이상한 앱 이용자다. 중고 거래 앱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중고 상품을 거래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거북이알의 거래는 애플리케이션의 원래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안나는 대표에 지시에 따라 거북알을 만나 직거래를 하면서 거북이알을 설득하는 임무를 맞게 되고, 직거래 현장에서 거북이알의 사연에 대해 듣게 된다.

 

2. 일의 슬픔

“데이비드께서 요청하신...”

  책에서 묘사되는 일터는 기쁨을 주는 장소가 아닌 스트레스와 부조리가 가득한 공간이다. 안나의 회사는 겉보기에는 꽤 세련되고 합리적이다. 예를 들어 수평한 업무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대표부터 직원까지 영어 이름을 사용하고 있으며, 매일 아침 스크럼(회의)을 통해 업무를 서로 공유하는 등 유기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시도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업무 환경을 볼 수 있다.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데이비드께서 말씀하신과 같이 영어 이름에도 높임법을 사용하고, 스크럼에서는 대표의 사적인 감정을 이유로 부당한 업무를 떠맡기 일쑤다. 안나의 회사는 동료 관계도 쉽지 않다. 두 살이나 어리지만 천재 개발자로 스카우트 된 막내 동료 케빈은 대표의 신임을 얻어 틈만 나면 업무 히스테리를 부린다.

  사실 거북이알의 회사에 비하면 주인공 직장의 부조리는 티끌처럼 느껴진다. 실제 있었던 일이 바탕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조리는 상식 너머의 것이다. 거북이알은 회장의 지시를 받아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그 좋은 소식을 인플루언서인 회장 인스타그램이 아닌 회사 홈페이지 공고에 먼저 게시했다는 이유로 회장의 분노를 사게 되어 월급을 현금이 아닌 회사 포인트로 받게 된다. 거북이알은 월급으로 받은 회사 포인트를 다시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중고거래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단편의 제목은 일의 기쁨과 슬픔인데, 도대체 책에서 말하는 일의 기쁨은 무엇일까?

 

 

3. 일의 기쁨

“이상하네. 이걸 육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대표의 지시를 받고 안나는 거북이알을 직접 만나러 중고거래를 하러 나간다. 안나와 거북이알은 중고거래를 마치고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함께 육교를 건넌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육교는 아니다. 그 이유는 육교가 도로를 가로지르지 않고 도로와 평행하게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육교는 신호등 없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려고 만드는 건축물이 아닌가. 하지만 길과 평행하게 놓인 육교는 본래의 제 기능을 할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안나와 거북이알은 육교의 의미를 찾기 위해 나름의 추측을 내놓는다. ‘육교는 그 아래쪽의 그늘을 위한 것이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직장인들이 운동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또는 조형물로서의 가치를 한다등의 의견이 나왔지만, 논리적으로 육교의 존재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이 도로와 평행하게 지어진 육교에서 그것의 의미를 찾는 장면은 마치 일 속에서 기쁨을 찾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돈이라는 것을 매개로 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통제된 환경과 시간에서 정해진 방법으로 일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의 가치관과 회사의 가치관이 일치하는 직장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같이 애초에 일은 기쁨과 행복보다는 슬픔과 고통을 느끼기 쉬운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일 자체는 그것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는 본질적으로 삶에서 행복을 위한 수단 또는 도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때문에 일로부터 일 이상의 이상적인 가치와 행복을 찾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은 반복되는 스트레스와 모순을 경험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일을 하면서 일에 대한 만족감이나 성취감이 밀려온다. 그럴 때는 이 맛에 일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과거의 스트레스가 모두 씻기는 경험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월급을 받는 날에 이런 기분을 느끼지만, 가끔은 일 자체에서 느껴지는 내적 만족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경험상 이런 상태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한다. 마치 마약처럼 보람을 느끼는 순간에는 고통이 씻겨나가는 것 같지만 업무로부터 오는 반복적인 스트레스가 기쁨을 금방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업무로부터 가치와 행복을 찾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가능하다면 나의 가치관과 적성에 알맞은 일을 찾아 종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에 대한 반복적인 실망감이 들거나, 통제되지 않는 업무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자신이 망가질 것 같다고 느낀다면, 일의 기쁨은 일 속에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 꽤나 위로가 된다.

 

4. 일과 일상

“사무실 나서는 순간부터는 회사 일은 머릿속에서 딱 코드 뽑아두고 아름다운 생각만 하고 아름다운 것만 봐요”

  거북이알은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부터 회사에 대한 생각은 딱 접고, 아름다운 것만 본다. 거북이알에게 아름다운 것은 집에서 키우는 거북이나 거북이 사진이나 거북이 영상이다. 많은 사람이 거북이알과 비슷할 것이다. 스위치를 껐다 켜듯 퇴근하고부터는 일과 철저히 단절된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이것이 워라벨(work-life balcance)이 맞는 좋은 삶이라는 생각도 이제는 문화가 되었다. 주말에 등산을 가자고 하는 부장님은 자기 삶이 없는 워커홀릭 부장이고, 주말 약속에서 업무 이야기를 하는 친구는 눈치 없는 친구이며, 퇴근 후 업무에 대한 문제로 직장 동료에게 연락하는 행동은 철저하게 금기가 되었다. 이처럼 지금은 일의 의미와 역할의 경계가 확립되었고, 이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합의가 된 상태이다.

  책에서는 재치있는 방법으로 요즘의 직장 문화를 은연중에 전달한다. 특히 거북이알이 키우는 거북이의 이름에서 이 점을 잘 볼 수 있다. 거북이알의 거북이는 총 세 마리인데, 이름이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페라리의 앞 두 글자를 따서 람보’, ‘마쎄’, ‘페라이다. 퇴근 후 거북이알의 기쁨은 거북이들이다. 사실 거북이의 이름이 의미하는 값비싼 차들은 근로에 대한 대가 즉 월급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작가가 말하는 일의 기쁨에 대해 나름의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책에서는 일터에서의 기쁨을 어디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책의 제목이 오히려 일의 고통과 슬픔이었다면 더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스토리이다. 하지만 일의 기쁨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제목에 있고, 그 누구도 그 기쁨이 일 속의 기쁨이라고 하지 않았다. 애초의 일의 기쁨은 일 속에 있지 않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일의 기쁨은 일 속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 속에서 찾기 힘든 기쁨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행동은 적은 확률에 나의 소중한 것을 내던지는 일종의 도박이 아닐까 싶다. 마치 책에 등장하는 천재 개발자 캐빈이 애플리케이션에 발생하는 버그 하나하나가 자기 자신의 버그라고 생각하여 자신과 주변 사람을 갉아먹는 것처럼 말이다. 일은 본질적으로 수단이고, 일 밖의 내 삶을 빛나게 한다. 책은 일의 본질을 이해하고 한 발자국 뒤에서 여유롭게 일을 관조하는 자세가 업무의 스트레스를 덜고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헤겔은 금반지의 비유를 든다. 금반지는 반드시 구멍이 있는데, 금과는 달리 실체가 없는 구멍 역시 금반지를 구성하는 본질이다. 구멍이 없다면 그것은 금덩이이지 금반지가 아니다. 반대로 금이 없다면 금반지는 그대로 ()’가 되어 버린다. 이와 같이 어떤 존재는 그것이 부정하는 존재에 힘입어서 존재를 완성한다.

  책에서 말하는 일과 기쁨의 관계가 이와 조금 비슷하지 않을까?

#3.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는 흥미진진한 남녀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단편의 리뷰에서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비교적 담담하게 여러분들께 전하려고 합니다. 리뷰를 읽고 두 인물 중에 어떤 인물에게 더 마음이 가시는지 판단해 주세요.

 

1. 지훈과 지유

“지훈 씨. 지훈 씨는 능력 있고 인기도 많잖아. 내가 다 알아요. 일 잘하지, 직장 번듯해, 응? 또 잘생겼고, 또 몸짱이시고.”

  주인공 지훈은 위와 같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외모도 번듯한 30대 남성이다. 지훈은 전 여자친구와 마주치는 것이 껄끄러워서 항공사를 고를 때 신중해야 할 만큼 많은 연애 경험을 갖고 있다. 또한 지금 만나는 이성과 헤어질 타이밍을 잡고 다른 이성을 만날 계획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이성 관계에서 강한 자신감을 보인다.

  또 다른 주인공 지유는 지훈과 같은 회사에 다니던 회사 전담 변호사였다. 그녀는 결혼 두 달만에 배우자 떠나보내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회사에는 그녀가 일본에서 지낸다는 소문만 간간이 들려왔다.

  이 둘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특별한 관계는 아니지만, 특별한 기운이 흘렀던 사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대화 코드도 잘 맞았고 서로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종종 대화 중에 미묘한 성적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지유가 퇴사하고 일본으로 떠난 뒤 둘은 일 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간단한 안부 물음으로 시작한 연락은 황금연휴에 후쿠오카 여행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일 년 만에 하는 연락이지만 두 사람은 어제 만난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지훈은 지유에게 다른 이성에게서 좀처럼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2. 후쿠오카 여행

 

[DAY 1: 유후인 호텔]

“옥상 온천은 밤 아홉시부터는 혼탕”

  지훈은 지유와의 연락 후 곧장 후쿠오카행 티켓을 예매한다. 마침 지유는 유후인이라는 지역에 호텔을 잡고 쉬고 있었고, 둘의 여행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유후인에서는 지유는 지훈을 위해 자신의 옆방을 예약해 주었고 일본식으로 한 방에서 같이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은 후 지유는 지훈에게 옥상에 있는 온천에 가자는 제안을 한다. 옥상 온천은 밤 아홉시부터는 혼탕이었기 때문에 지훈은 이 제안에 당황하고 긴장한다. 그는 방에서 푸시업을 하고 신속하게 자위를 한 후 옥상으로 향했다. 지훈이 온천에 들어서자 지유는 이미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지훈은 심장이 덜컹하는 것을 느꼈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탕에 몸을 담갔다.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혼탕과 각국의 문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던 중 지유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고 탕 밖에 음료를 뽑으러 자판기로 향했다. 지훈은 눈을 뗄 수 없었고 그날 밤 스스로를 계속 다그치면서 속으로 되뇐다

  ‘나는 스물셋이 아닌 서른셋이다. 가장 적절한 시기를 기다려야 해. 이제 황금연휴의 첫날일 뿐이다.‘

 

[Day 2: 후쿠오카]

“가만 보면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자기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같아요. 늘 자기가 하던 대로만 하고”

 

  두 사람은 후쿠오카의 오호리 공원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스타벅스에는 주문 대기줄이 건물 바깥까지 이어져 있었다. 줄을 기다리던 중 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시바견을 잠시 봐 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지유는 대기줄을 기다렸고 지훈은 강아지를 보고 있기로 했다. 강아지와 함께 있는 지훈을 보고 한 일본 여성이 다가와서 말을 건네었다. 그에게 호감을 보이는 것이 분명했고, 지훈은 와이프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짓말로 그 여성을 돌려보낸다. 마침 지유가 커피를 들고 나타났고 그새를 못 참고 여자에게 집적거린다며 지훈을 나무랐다. 지훈은 오해에 대해 해명하며 자연스럽게 지유의 모자를 자신에 가방에 넣어준다. 시바견을 맡긴 할아버지는 지유에게 일본어로 몇 마디를 건네었다. 두 사람에게 아이가 있느냐고. 부부인 줄 알았다고. 이 말에 지훈은 자신이 일본 여성에게 했던 거짓말을 떠올리며 내심 좋은 기분을 느낀다. 커피를 들고 둘은 산책을 했다. 걸으면서 지훈이 물었다. “그때 내가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어요?” 지유는 답한다. “안다기보다는 그냥 조금. 어느 정도는요.” 이 말을 하고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둘은 호수에 다니는 오리 배만 좇았다.

 

[DAY 2 밤]

“이 X발년이 열었으면 닫아놔야 할 거 아냐”

  둘은 저녁으로 모츠나베와 생맥주를 한 잔씩 했다. 식당 근처에는 지훈이 예약해 둔 호텔이 있었다. 지훈은 호텔까지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지유에게 부탁했고 지유는 흔쾌히 승낙했다. 호텔 앞에서 지훈은 자신만의 필승 전략을 준비했다. 그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데이트 중 여자의 물건을 맡아둔다.
2. 여자의 집 앞에서 아무런 아쉬움이 없다는 듯 정중한 미소를 보내며 쿨하게 헤어진다.
3. 여자가 싱숭생숭한 기분을 느낄 때쯤 다시 초인종을 누른다.
4. 맡아둔 물건을 잊었다며 아까와는 전혀 다른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면서 물건을 돌려준다.
5. 두말할 것 없이 동시에 두 사람은 입을 맞춘다.

  지훈은 지금 지유의 집 앞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전략을 변형해서 사용하기로 한다. 지훈은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백팩을 열고 오후에 맡아두었던 지유의 모자를 찾았다. 하지만 모자는 가방 속 어디에도 없었다. 당황한 지훈은 지유에게 전화를 건다. 창 밖 먼발치에 지유가 한 손에는 전화를, 다른 한 손에는 모자를 흔들고 있다. 지훈의 속셈을 미리 알았다는 듯 여유롭다. 그러고는 지유가 묻는다.

  “지훈씨 나랑 자고 싶었어요?”
  이 말을 시작으로 두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꺼내놓았다. 지훈은 진심을 담아 지유에게 해명한다.

  “지유씨랑 자고 싶은 게 아니라 만나고 싶은 거예요. 믿어봐요.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어요

  계속해서 지훈이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한다.

  “내가 지유씨 좋아하는 거잖아요. 여태까지 이렇게, 진짜, 뭔가, 통한다는 느낌이 드는 여자는 단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고요,”

  지훈은 어린아이처럼 지유에게 매달려서 떼를 썼고, 지유는 그런 지훈을 달랬다. 그렇게 일방적이고 질척거리는 통화가 끈질기게 이어졌고, 전화를 끊었을 때, 지훈은 울고 있었다. 지훈은 수치심과 함께 밀려오는 분노를 느꼈다. 책상을 주먹으로 쾅! 치는 순간, 작은 생수병이 넘어졌고 지유의 모자가 있던 백팩의 앞주머니 위로 물이 쏟아졌다. 지훈은 조금 전과는 다른 어조로 말한다.

  “X발년이 열었으면 닫아놔야 할 거 아냐

 

[Day 3 출국]

  출국 세 시간 전에 지훈은 수치심과 함께 눈을 뜬다. 지훈은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지하철 구석에는 할머니가 종이컵을 들고 구걸을 하고 있었다. 지훈은 주머니에 남아있던 엔화를 한 움큼 집어 할머니의 종이컵에 쏟아부었다. 쇳덩이가 물에 빠지는 소리가 났다. 손에는 종이컵에서 튄 커피가 묻어 축축했다. 할머니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한 거구의 일본 남성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고, 지훈은 살기 위해 지하철 역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감상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를 벌써 4번째 읽고 있다.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새로운 표현과 의미를 속속 발견했다. 덕분에 4번을 반복해서 읽을 동안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고, 앉은 자리에서 글을 완독할 수 있었다. 근래 본 소설 중에 가장 신선하고 스토리가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모든 책 추천하지는 않으나 이 책은 꼭 읽어보시길 권장한다.

  리뷰를 보신 분들은 지훈과 지유 중에 누구의 편을 들었을지 궁금하다. 나는 첫 완독 때는 지훈의 손을 들어주었다. 지유가 지훈에게 충분히 여지를 주었다고 생각을 했다. 또한 여행지라는 장소적 배경이 남녀 관계에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했던 것도 지훈의 편을 든 선택에 한몫했다. 지훈이 지유에게 아이처럼 매달리다가 그것이 거절당하자 돌변하여 혼자 욕을 하는 장면은 지훈의 이중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분노를 표현하는 인간적인 방법의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을 거듭할수록 모든 사건과 생각들이 전부 지훈의 입장에서 나왔다는 대목을 계속해서 발견할 수 있었다.

- 지유가 배우자를 잃었음에도 이것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지유에게 다가간 점

- 대화가 잘 통하고 서로의 유머 코드가 맞는다는 점

- 서로의 연인에 대해 질문할 때 은근한 성적 긴장이 느껴졌다는 점

- 지유의 언행을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하고 대화를 이어나갔다는 점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지훈의 사고방식과 이성에 대한 가치관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지훈의 편을 들었다. 그 이유는 지훈의 행동들이 양심의 경종을 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단편은 사회에 만연한 가벼운 연애와 미묘하게 내면화된 가부장제의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소비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는 듯하다. 또한 이런 자연스럽고 반복적인 소비는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지유가 지훈에게 이성적 관계에 대한 여지를 주었기 때문에 지훈이 지유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주장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쉽게 반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훈은 이미 그전부터 지유를 잠재적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지유를 만나러 일본 여행을 선택한 것도 그의 계획의 연장선에 있는 행동이었다. 지훈이 기대하던 지유와의 연애는 이전의 연애와 다르지 않은 가벼운 것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여행 내내 지훈이 이전의 연애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고와 행동으로 지유에게 접근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이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매번 느끼듯이 어떤 상황이든 한 쪽의 입장만 들어서는 그 관계가 설명되지 않는다. 양쪽의 입장에서 들으면 그들 각자가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소설에서 지유의 속마음과 입장을 드러내지 않지만, 반쪽짜리 이야기를 듣고 둘 간의 관계를 예측하는 것은 꽤나 어렵다.

 

  이외에도 소설 내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단편 마지막에 지유에게 매달리며 우는 지훈의 모습이었다. 지훈은 여행 내내 이십 대가 아닌 삼십 대로서의 여유 있는 모습으로 지유와 자게 될 가장 좋은 타이밍을 기다린다. 그는 마지막 날 밤 지유와 자려는 목적으로 나름 체계적인 모자 전략을 사용했음에도, 지유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울음을 터뜨린다. 지훈은 무엇 때문에 눈물을 보였을까?

  이에 대한 이유를 두 가지로 추측해 보았다. 첫 번째는 지훈에게는 가벼운 연애가 자신이 적립한 사랑의 개념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방법대로 지유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눈물을 보였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지훈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외모와 조건을 갖추었고, 상대방의 외면을 보는 연애를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이다. 지훈은 일정 기간을 교제하면 헤어질 이유를 찾고 적절한 타이밍에 관계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가벼운 연애 경험이 점차 쌓인다면 사회의 도덕적 잣대와는 별개로 반복되는 경험이 기준이 되어 육체적이고 가벼운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믿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두 번째는 지훈이 자신의 페르소나와 그 속에 감춘 검은 속내를 혼동하였기 때문에 진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지훈의 페르소나는 매너있고 진짜 사랑을 추구하는 남자의 모습이다. 지훈은 여행 내내 이 가면을 쓰고 젠틀한 모습으로 지유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부도덕한 진짜 모습이 지유에게 완전히 탄로나자, 방어적으로 다시 자기 가면을 눌러쓰고 진심으로 지유를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다. 지훈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수치심이 끝까지 지유에게 매달리면서 지훈을 울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는 순간만큼은 지훈은 머릿속에 진심으로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가지 중 어느 쪽이든 간에 작가는 지훈을 통해서 사회에 교묘히 숨겨져 있는 남성주의적인 사고와 행동을 풍자한다. 책을 처음 읽을 당시 지훈을 변호하고 있는 독자로서의 나의 모습과 그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사이트를 주었다는 점에서 참 즐겁고 유익한 도서였다고 생각한다.

 

이상으로 장류진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리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과와 서재

공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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