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독후감. 줄거리. 서평.
안녕하세요. 오늘은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다산책방) 책 리뷰를 하려고 합니다. 특히 이 책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장편 소설 중의 하나입니다. 책에는 기억나는 구절도 많고, 제 가치관에도 영향을 주었던 내용도 있었습니다. 제가 감명깊게 읽었던 만큼 개인적으로 이 리뷰를 보시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입니다. 재미있고 마음이 따듯해지는 소설을 찾으신다면 시간내서 읽어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그의 눈에는 펜이 아닌 컴퓨터로 글을 쓰고 핸드드립 대신 에스프레소 기계로 커피를 내리는 세상은
좀처럼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책 프로필>
- 장르: 장편소설
- 출판년월일: 2015년 5월 20일
- 분량: 451페이지
“내가 원하는 건 컴퓨터야! 빌어먹을 평범한 컴퓨터!”
아이패드를 사러 간 오베가 점원에게 짜증을 쏟아낸다. 오베는 결국 아이패드를 카운터에 던지고 나온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오베라는 남자’ 리뷰를 시작합니다.
** 주의: 리뷰에 곳곳에 스포일러가 있으며, 마지막에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오베의 일상
아침 여섯 시 그는 어김없이 동네 시찰을 돈다. 수첩을 들고 주차장의 모든 차량 번호를 꼼꼼히 적는다. 방문자는 24시간 이상 주차를 할 수 없다. 그 다음 그는 쓰레기 처리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찰 후 그는 모든 시설의 문을 잠그고 문을 세 번 당기고서야 몸을 돌린다.
출근은 하지 않는다. 그에게 일터는 31세의 직장인들, 너무 꽉 끼는 바지, 제대로 된 커피를 내려 마시지 않으며 책임을 지길 원하지도 않은 세대로 가득 찬 곳이다. 그 인간들은 턱수염을 공들여 기른다. 직장을 옮기고 아내를 갈아치우며 자동차 상표를 바꾼다. 자신들 기분이 당길 때마다.
오베는 인생의 1/3을 바친 그곳으로부터, 철 지난 세대가 흔히 겪는 것처럼, 명예퇴직이라는 단어 아래 쫓겨난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일상을 보낸 후 오베는 전화를 끊고 신문을 취소한다. 그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다가올 태풍을 대비하는 사람처럼 집을 정리하고, 집에 금이 간 부분을 수리한다. 늦은 오후, 여전히 쌀쌀하고 어둡지만 그는 라디에이터와 전등을 끈다. 오베는 뭘 하려는 걸까?
#. 오베와 그의 원칙
“오베의 아내는 금요일에 죽었고, 일요일에 묻혔으며, 바로 다음 월요일에 오베는 출근했다.”
그를 설명할 한 단어를 뽑으라면, 나는 ‘책임감’이라고 말하겠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은 어떻게든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는 동시에 챙겨야 할 직업이 있으니까.
오베가 최대한 마트 입구와 가까운 주차 자리에 차를 대려고 애쓴다. 자리가 없자 그의 차는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주차장을 돈다. 결국 만족스럽지 못한 주차와 함께 종일 언짢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낸다. 옆에서 아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윤기 있는 머리카락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의 원칙은 가끔 강박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그의 두 번째 원칙이다. 책에서 젊은 오베가 딱 한 번 화를 뿜어낸 적이 있다. 눌리고 눌려있던 화는 주변의 모든 사람을 얼렸다. 오베에게 도둑질을 뒤집어 씌운 남자가 오베의 아버지를 들먹여 모욕감을 줄 때는 아니었다. 오베의 아버지가 남긴 금이 간 시계를 누군가 몰래 가져갔을 때다. 오베는 시계와 범인을 보지 못했지만 단숨에 둘 다를 찾아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오베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속여먹도록 놔두지 않았다. 오베를 지탱하는 굳건한 원칙이 생겨난 순간이다. 오베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누군가 자기를 속이려 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50크로나 이하의 물건을 카드로 결제할 경우 3크로나의 추가 요금이 붙습니다.’와 같은 문구이다. 작은 돈 3크로나(약 4000원)에 오베는 거품을 문 채로 욕을 한다. 그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원칙을 꺾는 것과 싸웠다. 금액의 문제가 아니다. 오베가 그토록 외치던 원칙의 문제인 듯하다. 그래서 그는 그의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아내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비효율적이고 중요한 싸움을 한다.
#. 오베와 아버지
오베는 그날 밤의 자기 아버지만큼 자부심에 찬 남자는 본 적이 없었다.
여덟 살이었던 오베는 그날 밤 사브 말고 다른 차는 절대 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베의 아버지는 곧 오베이다. 오베의 아버지의 말을 누군가에게 그대로 오베가 한 말이라고 전하면, 모든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지저분하고 보수도 낮은 일에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아버지는“정직한 직업이니 할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오베는 그의 인생의 1/3을 보수와 상관없이 정직한 직업에 바친다. 아버지는 오베의 거울이다.
어느 날, 아버지는 오베가 바닥에서 주운 큰돈을 유실물 보관 센터에 가져다주었을 때 ‘옳은 것은 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오베는 결국 옳은 것을 위해 끝까지 싸운다. 그는 정의와 도덕, 근면한 노동처럼 옳은 것은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가 되었다.
또 다른 어느 날, 아버지는 부도덕한 동료의 도둑질을 발견한다. 그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떠벌이는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역시 오베는 누군가의 잘못을 결코 떠벌이지 않는 남자가 되었다. 훗날 오베를 싫어하는 동료 톰이 기차에서 도둑질을 하고 그것을 오베에게 덮어 씌운다. 오베는 도둑이 누군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베를 추궁하는 회사 임원 앞에서 그는 자신이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했을 뿐, 그 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베가 열여섯, 어느 저녁 오베의 아버지는 철로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철로로 객차가 돌진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무너질 듯한 집, 상처 난 손목시계를 남겼다. 그리고 직업을 남겼다. 오베는 학교를 자퇴했다. 오베는 아버지의 철도 회사에서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여 5년 동안 일했다. 그 기간 동안 오베의 얼굴에는 단 한 번의 웃음도 없었다. 5년의 마지막 날 오베는 기차에서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다. 오베는 웃음을 되찾았다.
#. 오베와 소냐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오베는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 적절한 표현이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또한 오베는 그녀만을 통해서만 세상의 색을 입힌다.
소냐는 오베의 인생의 나타난 시점부터 그의 전부였다. 오베는 소냐를 보기 위해 수개월간 같은 시간에 같은 기차를 탔다. 목적지는 없었다. 오베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한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그의 원칙은 그녀 앞에서 무너졌다. 소냐는 오베의 원칙을 꺾거나 굽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원칙이 그가 살아온 세월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를 존중했다. 그들이 처음부터 같진 않았다. 오히려 두 사람은 너무 달랐다. 비유하자면, 서로가 지구 정반대 편에서 출발했고 반대 방향을 향해 걸어오다가 둥근 지구의 한 기차 칸에서 만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자신의 것으로 인정했다. 여전히 그들은 서로 많이 다르다. 예를 들면, 소냐의 물건은 모두 ‘사랑스러운’ 혹은 ‘가정적인’ 것들인 반면 오베가 산 물건은 모두 ‘유용한’ 혹은 ‘기능적인’ 것들이다. 그녀는 음악과 책 그리고 추상적인 것들을 사랑했고, 오베는 손에 쥘 수 있는 것들을 믿었다. 소냐가 오베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던 날, 오베를 포함한 소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왜 하필 그녀가 오베를 택했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소냐는 오베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내면에서 추는 춤을 보았고, 그녀는 그 춤을 사랑했다.
그들이 누리는 행복과는 별개로 인생은 자신의 길을 따라 부지런히 흘러갔다. 그들은 남들보다 혹독한 길을 걸었고, 소냐는 오베를 남겨두고 먼저 떠났다. 오베는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죽이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그는 소냐와 함께 자신이 가진 것 전부와 자신조차 잃어버렸고, 죽음 이외에 길은 알 수 없었다.
“아내가 죽고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오베는 하루에 두 번 라디에이터에 손을 얹어 온도를 확인하며 집 전체를 점검했다.
그녀가 온도를 몰래 올렸을까 봐.”
#. 오베와 하얀 셔츠 남자들
소냐와 오베가 탄 버스가 사고로 뒤집혀 언덕을 굴러 내려갔다. 버스는 소냐의 두 다리와 뱃속의 아이를 함께 데려갔다. 수십 년 같았던 열흘이 지나고 그녀는 가늘게 눈을 떴다. 그 후로 오베는 하얀 셔츠의 남자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그들은 수도 없이 하얀 서류를 들이밀고 모든 빈칸을 채우게 했다. 그 서류 중에 소냐의 회복을 돕는 서류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소냐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설이 있다고 오베에게 제안했다. 마치 희망적인 소식인 것 처럼. 하얀 셔츠의 사람들은 오베와 그의 아내가 함께 살 수 있다고는 털끝만큼도 믿지 않았다. 오베는 그들을 강하게 미워한다.
수년 전, 오베가 소냐를 만나기도 전의 일이다. 시 의회와 하얀 셔츠 남자들은 오베의 집으로 수많은 편지를 보냈다. 내용인즉 시 경계 확정을 위해 아버지가 남긴 오베의 집을 팔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편지는 더 자주 오베를 찾았고, 더 강하게 협박했다. 이에 맞서 오베는 보란 듯이 시 경계에 놓인 집을 새로 짓기 시작한다. 건설 현장에 무작정 찾아가 일을 하며 집을 짓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배운 그대로 자신의 집을 직접 지었다. 몇 개월 후, 오베는 집에 마지막 못을 박는다. 그는 자신이 주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주택은 예측할 수 있는 것들 중에 하나였다. 주택은 공정하다. 공을 들인 만큼 값어치를 한다. 방수 처리를 하면 물이 새지 않고, 튼튼하게 지으면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주택이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오베는 털이 바짝 스는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깬다. 그는 본능적으로 주먹에 망치를 쥐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오베는 타오르는 불을 보았고 활활 타는 집이 오베의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은 옆집을 태우며 점점 커져만 갔다. 옆집에는 낯이 익은 노인이 불앞에서 자신의 손자 이름을 부르짖었다. 하얀 셔츠 남자들은 불에서 물러서서 화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오베는 불타고 있는 그 집을 짓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었을지 생각한다. 그러고는 새빨간 불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얼마지나지 않아 오베는 노인과 아이와 함께 집에서 나왔다. 오베의 가슴과 팔에 길쭉한 상처가 입을 벌렸고 그곳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순간 사이렌 소리가 연기를 뚫고 오베에게 닿았다. 오베가 불꽃과 싸우는 동안 불꽃은 쉬지 않았다. 불꽃은 옆집을 다 태우고 부지런하게 오베의 집 천장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오베는 필사적으로 집을 지키러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소방관들은 오베를 둘러싸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소방대장으로 보이는 하얀 셔츠 남자가 마치 어린아이를 가르치듯 터질 듯한 얼굴의 오베에게 상황을 한자 한자 천천히 설명했다. 얼굴로 튀는 소방대장의 침을 느껴졌다. 오베의 귀는 타닥타닥 나무가 타는 소리를 들었고, 오베의 눈은 소방대장의 귀 너머로 집에서 타오르는 연기를 보았다. 그는 집과 시 경계선 따위의 단어를 늘어놓았다. 허가가 나고 서류의 도장이 찍히기 전까지는 불을 끌 수 없다고 했다. 부지런한 불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삼켰고 오베는 멍한 눈으로 까맣게 타버린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와 오베의 집이 사라졌다. 그들의 추억이 까만 연기가 되어 날아갔다. 오베가 졌다.
다시 소냐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후의 일이다. 차량 진입이 금지된 거주자 지역에 흰색 셔츠의 흰색 자동차가 들어왔다. 그들은 시의회의 하얀 종이를 오베의 눈앞에서 펄럭였고, 오베는 또다시 무릎을 꿇었다. 하얀 셔츠의 하얀 종이는 오베의 원칙을 꺾는 보증 수표였다. 그들은 오베의 목에 슨 핏대를 무시하고 거주자 지역으로 차를 몰았다. 마치 그들은 오베가 다 마신 음료수 캔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았다는 듯 풀린 눈을 깔았다. 지나가다 만난 개에게도 그보다는 더 살가운 눈을 떴으리라.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가 오베의 옆집에 사는 오랜 친구 루네를 요양원으로 데려간다고 한다. 그는 학습된 무력감과 굴욕감을 느낀다. 익숙한 느낌이다. 소냐를 요양원으로 보내려던 그 하얀 셔츠들이 그의 친구까지 데려가려 한다. 오베는 또다시 패배를 준비한다.
#. 오베의 이웃
깔끔히 수리된 집. 어느새 땅거미가 진 창밖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지만, 집 안의 전등과 라디에이터는 어째서 인지 차갑게 식어있다. 한 남자가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침내 그는 원하는 것을 찾았지만, 눈빛이 빛나지는 않았다. 그는 조용히 의자를 밟고 빈틈없는 천장에 못을 들이밀어 틈을 만든다. 그는 살면서 수도 없이 많은 못을 박아왔다. 천장에 견고하게 못을 박는 것은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덤덤히 무언가를 결심한다. 그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리가 오베의 귓속을 찌른다. 오베는 그 소리가 고철로 집의 외벽을 긁는 소리라는 것을 단번에 파악한다. 오베는 바깥으로 나간다. 키가 2미터는 돼 보이는 멀대와 중동에서 넘어온듯한 임신한 여자가 차창 안에서 침을 튀기며 다투는 것이 보였다. 패트릭과 파르바네의 차량은 트레일러를 뒤에 달고 있었고, 트레일러는 오베의 집 외벽과 맞닿아 있었다. 오베는 무서운 기세로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 대신 트레일러를 후진한다. 한 소리를 내뱉으면서. “젠장. 팔 없는 놈이 백내장에 걸려도 너보다는 후진을 잘할거다.” 그들이 외벽을 긁는 바람에 오베는 너그럽게 계획을 바꾼다. 내일도 자살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이기에.
오베는 군사작전을 하듯 진지하게 다음 계획을 실행한다. 그는 차고에 들어가 문을 굳게 닫았다. 자동차에 올라서고 창문을 5cm 정도 연 후에 자동차 배기가스 통로와 연결된 튜브를 창문 사이로 끌어들였다. 곧 두터운 가스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오베는 물결치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를 다시 만나면 늙어버린 남자를 이전과 같이 좋아해 줄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녀 생각 앞에 자리를 잡지 못한다. 머릿속의 그녀가 가스와 함께 그의 목을 조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죽음의 두려움도 밀어내지 못한 그의 상상의 한 쪽 귀퉁이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차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든다. 착각은 곧 감각으로 바뀐다. 파르바네는 이렇게 잘 만든 그의 계획을 한 번 더 망친다.
그녀는 계속해서 오베를 방문한다. 오베에게 잡일을 부탁한다. 아이들을 맡기고, 책을 읽게 하고, 남편 패트릭의 병문안을 가기 위해 운전을 하게 한다. 또한 라디에이터 수리까지. 노인에게 잡일을 부탁하는 사람치곤 밉지 않다. 오히려 지혜롭다. 오베는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 치고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베의 입에는 거친 불만이 가득했지만, 그는 나름 착실히 파르바네의 지시를 따른다.
그들 사이에 재미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파르바네는 오베에게 운전 연수를 부탁한다. 그녀는 엑셀과 브레이크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 당연하게도 뒤에 서있던 자동차는 파르바네의 얼굴에 침을 튀기듯 거칠게 경적을 뿜어냈고, 얼어버린 오베의 차는 뒷 차를 '콩' 하고 박는다.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을 쏟는 그녀에게 오베는 말한다. “내가 뇌 수술을 하라는 것도 아니잖소. 차를 운전하라고 하는 거라고. 차에는 액셀레이터, 브레이크, 클러치가 달려 있어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멍청이들도 이걸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았다고, 그러니 당신도 할 거요. 왜냐하면 당신은 완전히 멍청이는 아니니까.” 파르바네가 기억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칭찬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운전을 배웠다.
오베는 꾸준하다. 그것이 그를 그답게 만든다. 그의 자살 계획은 점점 발전해갔다. 그리고 오베가 스스로 만들어낸 그의 인연들은 기어코 그의 청사진에 물을 엎지른다. 차곡차곡 쌓인 그의 소중한 이웃들은 어느덧 오베의 사브를 가득 채운다. 오베의 차 안은 불편하지만 웃음이 넘친다. 물론 오베의 표정은 굳어있다. 그들은 오베 곁에 누가 있는지 깨달음을 주었고, 결국 포기를 모르는 오베가 죽기를 포기하게 만든다. 삶이란 게 참 이상하다. 다시 말하지만, 사실 그는 삶을 포기하고 죽는 남자가 아니다. 다만 소냐가 떠나면서 오베는 자신이 가진 것 전부와 자신조차 잃었다. 단 한 번의 인연으로 오베의 전부를 차지한 그녀의 빈자리는 영영 비어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자리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득 채웠다.
#. 결말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또다시 차를 몰고 차량 진입이 금지된 거주자 구역으로 들어선다. 이번에는 조금 더 큰 차에 수행원으로 보이는 한 여자도 함께 타고 있다. 오베의 친구 루네의 아내는 연약한 울음으로 그들에게 호소한다. 하지만 하얀 셔츠들은 단호하게 루네의 휠체어를 밀고 그를 요양원으로 데려가려 한다. 이때 오베와 그의 사람들이 하얀 셔츠들을 막아선다.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하얀 셔츠들을 저지할 수 있는 무기를 꺼낸다. 그들의 무기는 꽤나 효과적이었다. 오베는 처음으로 하얀 셔츠를 이긴다. 자신이 만들어 낸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그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오베는 알고 있다. 그들이 소중한 만큼 자신의 삶이 여전히 소중하다는 것을 오베는 알았을까?
오베의 동네에서는 행복한 나날이 지나간다. 절대 굽지 않을 것 같았던 오베의 원칙도 서서히 굽어진다. ‘원칙은 원칙이다’ 라는 원칙. 세상에 대한 믿음이 생긴 까닭이다. 이웃의 도움을 받아 실패한 아이패드를 사는 것도 성공한다. 오베는 어느덧 파르바네와 패트릭의 가족이 되었다. 부부에게는 오베를 좋아하는 두 아이가 있다. 그래서 오베는 할아버지가 된다. 또한 자신의 일을 되찾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한다. 집을 수리하는 일. 이 일은 그에게 택배을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는 일인 것 같아 보인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행복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파르바네는 어느 11월 싸늘한 느낌에 침대에서 눈을 뜬다. 창틈을 통해 오베의 집을 본다. 오전 8시 15분, 오베의 집 앞 눈이 깔끔히 치워져 있다. 그녀는 오베에게 곧장 달려간다. 침실에 들어가 더듬더듬 불을 켠다. 눈을 감은 오베는 평안한 얼굴이다.
#. 책의 매력
책은 간결한 문장과 담담한 어조로 잔잔하게 서술한다.
오베가 자살을 시도할 때도, 도둑놈으로 몰렸지만 자신의 원칙을 지키고자 입을 굳게 닫고 있을 때도, 그가 직접 지은 집이 불에 탈 때도, 오베의 아버지가 철로에서 세상을 떠날 때도, 그가 그녀와 만나고 사랑하고 사별한 순간까지. 언제나 담백하다. 절제한다. 그의 감정과 생각을 애써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독자로서 나는 책에서 보여주지 않은 장면이 궁금했다. 계속해서 탐색하고 공감했다. 그러다 뚜껑이 열리는 순간 감정이 펑 하고 쏟아져 나온다. 더 깊게 마음속으로 흘러들었다.
책은 독자를 끌어당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로 옆에서 들여다본 기분이 들었다. 오베는 답답했고, 지나치게 신경질 적이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모진 그를 끊임없이 변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찍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 살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대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어린 오베의 아픔에 공감했고, 청년 오베의 성공을 기도했다. 황혼 오베의 변화를 기뻐했다.'
오베라는 남자(A man called Ove)
다과와 서재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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